일거양득 고사성어 일거양득 유래

    고사성어란 고사에서 유래된 한자어 관용어를 말합니다. '고사'란 유래가 있는 옛날의 일로 주로 역사적인 일을 가리키고, '성어'는 옛사람들이 만들어낸 관용어를 일컫는 말입니다.

    오늘은 고사성어 '일거양득'의 뜻과 유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일거양득

     

    일거양득 한자

    일거양득 (一擧兩得)

    ㆍ 一 : 한 일

    ㆍ 擧 : 들 거

    ㆍ 兩 : 두 양

    ㆍ 得 : 얻을 득

     
     

    일거양득

     

    일거양득 뜻

    한 가지 일로써 두 가지 이익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일거양득 유래

    《진서(晉書)》 〈속석전(束晳傳)〉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진(晉)나라의 혜제(惠帝) 때 저작랑(著作郞)을 지냈으며, 진사(晉史)를 편찬한 속석이 농업 정책에 관하여 진언하였다. 그는 이때 “위(魏)나라 때의 개척지인 양평(陽平) 지방으로 들어가 살게 했던 백성들을 다시 서쪽으로 이주시키자.”고 제의하였는데, 그 성과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백성들을 서주(西州)로 이주시킴으로써 변방 지역을 보충하고, 10년 동안 부세를 면제해 줌으로써 이주시킨 일을 위로합니다. 이렇게 하면 밖으로는 실제적인 이익이 있게 되고, 안으로는 관용을 베푸는 일이 되어 일거양득이 됩니다.”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도 이런 이야기가 보인다. 진(秦)나라의 혜문왕(惠文王) 때의 일이다. 패업(覇業)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던 왕에게 재상 장의(張儀)는 중원(中原) 진출을 주장하였고, 중신 사마 조(司馬錯)는 이에 반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무릇 나라가 부유하기를 바라는 군주는 국토를 넓힘을 우선으로 해야 하며, 병사들이 강력하기를 바라는 군주는 무엇보다 백성들이 잘 살 수 있게 해야 하며, 패자(覇者)가 되기를 바라는 군주는 먼저 덕을 쌓는데 힘써야 한다고 합니다. 이 세 가지가 이루어지면 패업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진나라의 국토는 협소하고 백성들은 빈곤합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면, 먼저 강력한 우리 진나라 군사로 하여금 촉(蜀)나라 땅의 오랑캐를 정벌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국토는 넓어지고 백성들의 재물은 쌓이게 될 것입니다. 한 가지 일로써 두 가지 이익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혜문왕은 사마 조의 주장에 따라 오랑캐를 정벌하여 국토를 넓혔다.

     
     

    《춘추후어(春秋後語)》에서도 다음과 같은 ‘변장자(辨莊子) 이야기’로 일거양득을 설명하고 있다. 힘이 장사인 변장자가 여관에 투숙하였다. 밤이 깊자, 밖에서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소리가 들렸다. 이 말을 듣고 호랑이를 잡으러 나가려고 하자, 여관의 사동 아이가 말리면서,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나타나서 서로 소를 차지하려고 싸우고 있습니다. 잠시 후면 한 마리는 죽고, 한 마리는 상처를 입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가서 잡으십시오.”라고 하였다. 사동의 말대로 변장자는 힘 안 들이고 한꺼번에 호랑이 두 마리를 잡았다. 일거양득이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은 이 때부터이다.

     
     

    ‘일거양득’과 같은 말로 《전국책》의 〈초책(楚策)〉에는 ‘일거양획(一擧兩獲)’이라 하였으며, 《북사(北史)》에는 ‘일전쌍조(一箭雙雕)’라 하였다. 그밖에 ‘일석이조(一石二鳥)’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

     
     

    일거양득

     

    이상으로 '일거양득 (一擧兩得)'의 뜻과 유래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출처: 두산백과)